웨슬리의 툴박스

실시간 전력소비 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 미터를 설치하고 나니 집 안의 전력소비 행태에 대한 유용한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대기 상태로 있을 때는 약 80W를 소비하고 있고 냉장고가 최고조로 가동될 때에는 여기에 90W가 추가되더군요. 그러다가 저녁 시간에 TV가 꺼져 있는데도 전력소비량이 300W를 훌쩍 넘기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원인이 무엇인지 추적해보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렇게 소비량이 높게 나오는데에 일조한 장본인은 조명이었습니다. 거실과 공부방에 설치된 형광등은 하루에도 몇 시간 동안 켜져 있으면서 전체 소비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LED 조명이 더 높은 효율을 보이면서도 최근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본격적으로 여기에 투자를 해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저희 집에 설치된 조명은 한국에 요즘 건설된 다른 아파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PL형 형광등으로, FPL이라고 줄여 부르고 있습니다. 4핀짜리 2G11 연결부를 사용하며 외부 안정기가 필요합니다. 이를 대체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조명만 교체하거나, 안정기와 조명은 교체하고 연결부는 그대로 두거나, 내부를 완전히 교체할 수 있습니다. 조명만 교체하는 방법이 가장 간단하거니와 전면 교체보다도 그다지 비싸지 않다 보니 어떤 선택을 할지는 자명했습니다. 한국 회사인 탑룩스가 국내에서 생산 및 판매하는 해당 LED 조명 제품이 할인 행사 중이라 구매했는데, 23W 계열은 약 2만1천 원, 15W 계열은 1만4천 원 정도 했습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FPL 조명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품 사양에 따르면 이 LED 조명은 유사한 크기의 FPL 제품과 비교했을 때 전력소비량이 절반 가량이면서 빛의 총량, 즉 광선속이 85%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실제 성능과 같다면 효율이 상당히 높아지는 셈입니다. 육안으로 보면 조명의 한쪽은 히트싱크로 완전히 덮여있고, 기존의 4핀 배열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핀 자체는 그냥 둥근 형태로 되어 있고 FPL에 달려있는 핀처럼 가운데 부분이 패여 있지 않아서 끼울 때 안쪽에서 잘 고정되지는 않을 듯 합니다.

FPL 조명의 둥근 모서리는 이 LED 조명에서 비교적 잘 재현된 편이라 조명기구 끝 부분에 있는 금속 걸쇠에 그대로 손쉽게 끼울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한쪽 끝에 붙어 있는 장치 안전 관련 인증 및 등록사항 덕분에 설치하면서 좀 안심이 되기도 하고요.


조명기구 덮개를 열어서 새 조명을 설치하려고 하고 있으니까 아이들이 무얼 하는지 알아차리고 재빨리 와서 조명을 들고 라이트세이버 격투 장면을 재현하면서 놀더군요. 이렇게 기습적으로 제품의 견고함을 시험당하고 난 뒤 비로소 설치작업을 재개했습니다.


연결부나 안정기를 교체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기존 FPL 조명을 제거하고 새 LED 조명을 그 자리에 넣는 것만이 설치 작업의 전부였습니다. 이렇게 간단하고 신속하게 끝낼 수 있는 일이었지만 만일을 위해 조명을 끼우고서 약간 흔들어 주어서 핀이 제대로 고정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다시 불을 켜보니 딱히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고, 단지 조명 자체에서 작게 지잉 하는 소리가 계속 나기는 했습니다.


LED 조명을 설치하고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띈 점은 생각보다 매우 밝게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FPL 조명이 최고 밝기를 내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이 현상을 가중시켰습니다. 단 한 개의 15W LED 조명이 처음에는 두 개의 32W FPL 조명보다 밝게 보였고, FPL이 충분히 밝아진 뒤에도 상대적으로 약간 어두워 보일 뿐이었지요. 그래서 객관적으로 밝기를 측정할 필요를 느꼈고, 이를 위해 조도계 역할을 하는 스마트폰 앱을 사용해보기로 했습니다.


내장 카메라로 주변 환경의 조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앱만 해도 여러 종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중 6개를 내려받아서 다양한 환경에서 사전 시험을 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단 3개 만이 비교적으로 일관되고 현실적인 수치를 나타냈는데, 최종적으로 Galactica Luxmeter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앱을 사용하여 거실과 공부방의 설치 전/후 밝기를 재보았습니다.


같은 조건에서 같은 수의 조명을 사용하도록 해놓고 보니 LED 조명이 역시나 더 밝은 것으로 측정되었습니다. 이는 육안으로 확인한 결과와는 일맥상통하지만, 사양표에 나온 수치와는 반대의 결과입니다. 이 모순을 설명할 방법이 한 두 가지 있습니다.

가장 큰 부분은 사용된 FPL 조명이 새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거실에 사용된 45W짜리의 경우 2,500시간, 공부방에 사용된 32W짜리의 경우 1,500시간 정도 사용한 것으로 짐작이 되고 있는데, 해당 조명은 2,000시간 사용 후 원래 나와야 하는 광선속의 최소 80%가 나오도록 인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측정 당시 사용 주기 시점의 실제 수치는 새 LED 조명이 내는 수치와 비슷하거나 약간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클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LED 조명은 모든 빛을 아래로만 내리쬐는데 비해 FPL은 모든 방향으로 방사시킨다는 사실도 한 몫 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집중된 상태로 빛이 나옴에 따라 조명기구 내의 반사판을 거치면서 발생하는 손실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것이지요.

상황이 어찌 되었든, LED 조명이 기존의 FPL 제품의 성능에 잘 따라붙어주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새로 산 FPL 조명하고 비교하더라도 최소한 거의 비슷한 밝기가 나온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제대로 된 대체 제품이라는 것을 증명한 셈입니다. 다음은 공표된 전력소비량이 사실과 같은지 확인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업은 조명을 켜고 끌 때 스마트 미터에서 보고되는 전력소비량을 계속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두 상태의 차이를 측정한 것이지요. 전력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방해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했습니다.


FPL 조명은 표시된 수준보다 약간 적게 (약 5%) 전력을 소비한 반면 LED 조명은 다소 많이 소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3W짜리의 경우 약 3% 초과했는데, 이는 안정기의 변환손실에 기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15W 짜리는 18W나 필요했기 때문에 예상보다 20%나 더 소비한 꼴입니다. 그러므로 이 제품의 실제 소비전력은 변환손실을 제외하더라도 17~18W 정도로 보아야 하고, 제품 번호도 이 사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FT18W-04-57A). 하지만 제조사가 이에 맞게 제품 사양이나 포장을 변경하는 것을 깜박한 듯 합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두 종류의 제품 모두 FPL 조명에 비해 40%가 넘는 절전효과를 내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를 앞서 본 조도 측정 결과와 합쳐서 보게 되면 LED가 대등한 수준으로 빛을 내더라도 전력소비량을 사실상 절반으로 줄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저희 집은 거실 등이 매일 약 6시간, 공부방이 약 3시간 정도 켜져 있는데, 같은 수의 등을 켰을 경우 한 달에 약 17kWh 정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더 밝아진 덕분에 교체 후 한 번에 켜는 등 수가 줄어든 편입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좀 더 아껴 쓰게 되어 절감량이 25kWh에 더 가깝지 않을까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몇 달에 걸쳐 월간 전력소비량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결과로는 일단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