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의 툴박스

요즘 가정집이 흔히 그렇듯이 집안 곳곳에 전자기기들이 벽면 전원부나 USB 포트에 꽂혀 있는 채로 흩어져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사용 중이거나 유휴 상태일 때 얼마나 전력 소비가 일어나는지 측정을 해보면 불필요하게 전기가 사용되는 것을 차단하는 과정의 적당한 출발점이 되겠지요. 그렇게 실제로 지난 며칠 동안 일일이 재본 결과 거실과 컴퓨터/네트워크 장비 부분에 대한 결과를 드디어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되는 대로 나중에 다른 가전기기도 살펴볼 생각입니다.

전체 결과를 표로 정리한 것은 이 글 말미에 있습니다만, 먼저 주의깊게 언급할 만한 관찰 결과들에 대해 짚어 보겠습니다.

1. 멀티탭에 달린 스위치 속 표시등을 주의하자

멀티탭 스위치에 들어있는 표시등은 효율적인 대기모드를 지원하는 장치들 만큼 전력 소비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대략 0.2 ~ 0.25W 정도에 해당합니다. LED 치고는 과하다는 생각에 좀 더 알아보았는데, 대부분 네온 램프를 쓰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작동 전압이 90V 정도이기 때문에 간단한 저항을 하나 붙이면 비교적 쉽게 220V 전원에 직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상 작동 전류가 1mA이므로 네온 램프 + 저항 조합은 총 0.22W = 220V x 1mA 소비할 것입니다.

반면에 LED는 2 ~ 3V 정도 전압에 15 ~ 20mA를 소비하므로 전구의 효율은 두 배 정도입니다(네온: 90V x 1mA = 90mW, LED: 3V x 15mA = 45mW). 하지만 전압을 맞추기 위해 저항을 쓸 경우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게 됩니다(네온: 130V x 1mA = 130mW, LED: 217V x 15mA = 3,255mW). 그러므로 전력변환회로를 써야 하는데, 좁쌀만한 저항만큼 싸지도 작지도 않습니다. 왜 네온 램프가 선택받았는지 명백합니다.

만약 낭비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런 표시등이 항상 켜져 있는 상황은 피하는 것이 좋겠지요. 만약 표시등 들어있는 스위치 6개가 항상 켜져 있을 경우 1.3W 정도에 해당하는데, 매 달 1kWh 정도의 전기가 낭비되는 것입니다. 방에 들여놓을 멀티탭을 고를 때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지요. 사용할 기기가 항상 사용되거나 대기전력이 적을 경우 그냥 단순한 멀티탭을 쓰는 편이 낫겠습니다.


2. 완전 충전된 기기도 여전히 전기를 빨아먹는다

요즘 휴대용 기기가 넘쳐나는데, 상당수는 거치대에 올려놓으면 편리하게 충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기기 충전이 끝난 후에도 배터리 방전을 막으려고 충전회로가 계속 전력을 끌어온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제가 쓰는 전기 면도기를 확인해보니 완전히 충전된 후에도 몇 시간 동안 거의 1W 정도를 먹고 있었습니다. 면도 한 번 하고 충전하는데 단 몇 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불필요한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충전은 2주 정도에 한 번 하고 충전이 다 되면 충전기 전원을 차단하는 식으로 생활 방식을 바꿨습니다.

한 때 주력 휴대전화로 쓰다가 밀려난 이후로 약 5년 정도 거치대에 올려놓고 탁상시계로 써오던 모토로이 스마트폰에 대해서도 보았습니다. 완전히 충전된 상태로 유지가 되고 있었음에도 화면이 켜진 상태였기 때문에 USB 허브에서 지속적으로 1.2W 정도를 끌어오고 있었더군요. 멀티탭 표시등과 마찬가지로, 이 정도면 매월 전력 사용량 맨 끝자리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이 스마트폰은 은퇴시키고 일반적인 디지털 탁상시계로 교체하게 되었습니다.

모토로이와 면도기가 그랬듯이, 거치대에 꽂아놓은 스마트폰들 또한 완전 충전 후 약간씩 전기를 빨아먹고 있었습니다. 충전이 끝나면 뽑아놓는 것이 "스마트"한 행동이겠지요.

3. 할 수 있다면 저전력 모드를 찾아 써라

지난 번 올린 글에서 알아보았듯이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에 절전 모드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 평상시 보다 전력 소비량을 40% 줄이게 되었습니다. 컴퓨터의 기본 모니터 (23인치 LED)에도 비슷한 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한 번 써보기 시작했는데 단점이 있더군요. 전력 사용량을 동적으로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색상 정확도나 명암 대비가 희생된다는 것입니다. 인터넷 할 때는 별 문제가 안되지만 사진 편집 작업 중에는 꺼놓아야 하겠습니다.

그 옆에 12년 된 17인치짜리 보조 모니터의 경우 가끔씩만 쓰고 있는데, 꺼둔 상태에도 대기전력을 0.7W 소비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요즘 출시된 제품들에 비해서는 제법 큰 편이지요. 다행히도 뒷면에 모든 전원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스위치가 달려 있어서, 안 쓸 때는 이걸로 전원을 꺼 두면 되겠습니다.

한편, 닌텐도 위(Wii) 게임기는 대기 상태로 들어가면서 9.4W씩이나 낭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는 WiiConnect24라는 기능 때문인데, 대기 상태에서 인터넷에 접속을 유지하도록 해줍니다. 제법 흥미로워 보이기는 하지만 2013년에 지원 중단이 되었기 때문에 시스템 설정에서 계속 켜둘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꺼버렸지요.

낭비로 말할 것 같으면 사실 IPTV와 위성방송 셋톱박스들이 가장 대표적인 주범들입니다. 이들의 악명은 익히 대중매체에서 알려진 바 있는데, 대기 상태가 되어도 전력소비량이 거의 줄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화면만 안 나오게 하는 것 외에 크게 하는 일이 없는 셈이지요. 시청하고 있지 않을 경우 전원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만이 합리적인 절전 방법입니다.

4. 큼지막한 전력소비량 조사표 공개

마지막으로, 집에 있는 각종 기기들의 전력소비량 측정 자료를 모두 정리해놓은 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구체적인 제품 모델명을 수록해 놓기는 했지만, 각각 자신이 속한 종류를 어느 정도 대표하는 역할도 하리라 봅니다. 모든 값은 와트(W)로 적었습니다.


[ 용어 및 해설 ]

끔: 기기를 전원 스위치로 꺼두었거나, 전원에는 꽂혀 있으되 어떠한 작동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상태를 뜻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대기상태로 있습니다.

유휴: 켜져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는 있으나 (전원등 내지 화면이 켜져있거나 명령에 즉각 반응하는 등) 실제로는 아무런 일도 안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작동: 기기 본연의 목적을 수행하고 있을 때입니다 (방송을 저장하고 있는 등).

정격: 전원공급장치나 기기 자체에 표기된 정격 최대 전력 소비량입니다.

1.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스트리밍(전송받은 대로 보여주기) 할 때 측정된 값입니다.

2. 이 제품은 집 안의 다른 네트워크 장비들과 달리 본체에 전원 스위치가 달려 있었습니다. 해당 값은 전원 스위치를 껐을 때 측정한 것으로, 외장 전원공급장치가 소비한 대기전력에 해당됩니다.

3. VoIP 게이트웨이는 음성 인터넷 프로토콜(Voice over Internet Protocol), 즉 인터넷 전화 서비스와 일반 전화기를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4. G-PON ONT는 기가비트급 수동 광통신망(Gigabit Passive Optical Network)의 광통신망 단말장치(Optical Network Terminal)를 뜻하는데, 집으로 들어온 광통신 신호를 변환시켜 이더넷 회선에 넘겨 줍니다.

5. 홈 게이트웨이는 집 안의 "스마트 홈" 장비들과 아파트 건물에 존재하는 다른 장비 및 정보 제공장치를 한데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6. 염소 시뮬레이터라는 게임을 하면서 측정된 값입니다. 평상시에는 대부분 훨씬 낮게 나옵니다.

7. 소리 출력을 최대로 한 상태에서 음악을 틀었을 때 측정되었습니다. 평소 나오는 소리는 유휴 상태 소비량을 크게 넘지 않습니다.

8. HDMI-VGA 변환 어댑터는 (맥 컴퓨터에서 나오는) 디지털 HDMI 영상 신호를 (DVI조차 없는 구식 17인치 모니터가 받아들이는) 아날로그 VGA 신호로 바꾸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