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는 컴퓨터 프로젝트 (2/10)


논산 훈련소에서 귀향한 직후(휴학계를 안 내었기에 정확하게 말하자면 학교로 돌아옴)인 9월 중순부터 옷처럼 입는 것이 가능한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목표에 알맞은 시스템이라면 폭과 길이가 작을 뿐 아니라 가볍고 납작해야 할 것이다. 요즘 노트북 컴퓨터는 가볍고 납작한 점까지는 근접을 했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고려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첫째, 화면 크기의 대형화 추세에 따라 폭과 길이가 많이 커졌다. 둘째, 입력 장치가 분리되어 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이렇게 해야 책상에 올려놓지 않고도 쓰는 것이 가능해진다. 세째, 노트북 컴퓨터라는 기종은 지금도 사실상 '조립 완성품'의 성격이 짙다. 손 하나 대지 않아도 이미 작동되는 상태로 오게 되어 있다. 여러 시스템을 직접 꾸며온 경력이 있는 본인에게는 도저히 직성이 충분히 풀리지 않는 대상이었다. 여러분 중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분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엔 PDA가 떠올랐다. 요즘 PDA는 천연색 화면도 지니고 있고, 내장 CPU는 200MHz까지 작동하고, 윈도우와 유사한 인터페이스를 가진 운영체제를 돌리며 일반 컴퓨터에서 쓰는 프로그램과 닮은꼴인 전용 프로그램도 많이 등장하였다. 게다가, 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로 작다. 여기까지 들어보면 괜찮은 후보감으로 보이는데,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화면이 작은 관계로 PDA를 가동시키는 내장 운영체제는 일반 컴퓨터의 것만큼 강력하지 못하며, 흔히 써오던 일반 컴퓨터 프로그램을 그대로 옮겨와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PDA는 일반 컴퓨터의 진정한 대안이 아니며, 엄밀한 의미에서 '컴퓨터'로 보아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역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Compaq's iPaq PDA

이렇게 된 이상 입는 컴퓨터에 사용될 부품의 범위는 상당히 축소가 되었다. 일반 컴퓨터 메인보드 중에서 가급적 가장 작은 것, 컴퓨터의 일반적인 해상도는 나타낼 수 있는 소형 모니터, 입은 상태로 쓸 수 있는 소형 키보드 및 마우스 등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소형 메인보드를 찾아봐야 했는데, 이것은 흔한 것이 아니기에 그 동안 박람회를 참관하면서 끌어 모은 책자를 뒤져보게 되었다. 그 중에 맥산시스템이라는 회사의 책자가 눈길을 끌었다. 이 회사는 주로 셋탑박스나 산업용 컴퓨터를 위한 주문형 디자인 메인보드를 취급했는데, 이런 특성 때문에 상당수가 일반 메인보드보다 매우 작게 설계되어 있었다. 이 회사는 꼭 방문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행인 점은 한국 토종 회사라서 방문이 그리 까다롭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는 것이다.

One of Maxan's Geode based mobo, MSC-645E

한 가지 어려웠던 점은 회사 위치가 애매해서 택시를 타고 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황당하게도 본인이 자리잡고 있던 기숙사에서 버스를 타면 사실상 한 번에 올 수 있는 위치이기도 했다. 어쨌든, 사무실에 도착한 후 영업 담당자에게 이번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맥산시스템의 제품이 적합할 것 같으니 새 카탈로그를 보면서 상담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신제품 목록을 검토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중 MSC-740B와 MSC-735가 요구 조건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것으로 판단했다.그 요구 조건이란, 크기가 충분히 작고, 펜티엄III급 CPU를 지원하며, 3D가속 기능 및 LCD 패널의 직접 지원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735 모델이 좀 더 작은 관계로 이 제품의 재고 여부를 먼저 묻자 실제 대량 생산은 되지 않은 모델이라고 하여 740B 모델을 선택하도록 했다. 더군다나, 이 메인보드는 보관실에 이미 몇 대를 비치해놓은 상태라 그 자리에서 구매가 가능했다. 전자 결제로 40만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메인보드 치고 정말 비싸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기분 좋게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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