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전프로를 걸어다닐 때와 자동차 탈 때 사용하기

나주 호수공원 도착 후 여행용 케이스에서 꺼낸 애플 비전프로 착용하기

제가 20여 년 전 웨어러블 컴퓨터를 개발했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이동 중에 컴퓨터를 항상 곁에 두고 쓸 수 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비전프로 또한 몸에 착용하는 컴퓨터라고 할 수 있으므로, 그만큼 유용한지 한 번 확인해 보고 싶더군요. 그래서 본체를 여행용 케이스에 담아서 동네 공원에 와서는 벤치에 내려놓고 위와 같이 착용해 보게 되었습니다. 입는 데 걸리는 시간은 90초 정도로, 제가 예전에 만들었던 작품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떠 있는 창과 상호작용 하기 위해 직접 버튼을 "터치"하거나 제스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 부팅이 마무리되고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홈뷰 화면을 불러들여 각종 앱을 실행할 수 있는데, 이렇게 띄운 창은 모두 허공에 있기는 해도 주변 공간에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게 됩니다. 각 창과 상호작용을 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손으로 제스처를 하는 것이지만, 창 앞에 바짝 다가간 뒤 대형 터치스크린을 쓰는 것처럼 "터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햅틱이나 촉각 반응이 없기 때문에 다소 어색하지만, 음향 효과 덕분에 약간의 반응이 있다는 착각을 일으켜 사용에 도움이 됩니다.
가상 키보드나 받아쓰기로 입력을 해볼 수 있습니다

문자 입력이 필요할 때는 시스템이 키보드나 키패드를 보여줍니다. 앞서와 비슷한 방식으로 키를 터치해서 입력할 수 있지요. 간단한 문장까지는 큰 문제가 없지만, 긴 블로그 글 작성 같은 경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 때는 차라리 받아쓰기 기능을 쓰는 게 나을 수 있는데, 맥에서 쓸 때와 같은 수준으로 작동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비전OS가 현재 버전에서 사용 언어를 영어로 한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키보드 입력방식 선택도 마찬가지고요. 이것은 인위적인 제약이라 추후 해제가 되기는 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한국어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당분간 뭔가 창의적인 방법으로 우회할 필요가 있습니다. 별도 입력기를 내장한 앱을 사용하는 것처럼.

그냥 옆에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제가 허공을 찔러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편, 비전프로를 개방된 공공장소에서 사용하는 것 자체가 썩 좋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작업할 때 띄워놓은 창은 오로지 본인만 볼 수 있고, 주변 사람들 눈에는 당신이 마임(무언극)을 하듯이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특정 위치에 창이 고정되어야 한다는 점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창을 잡고 "들고 가는" 게 가능하긴 하지만,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딘가 "내려놓기"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걸어다니면서 앱을 사용하는 건 스마트폰이나 제가 예전에 만든 웨어러블 컴퓨터에서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이 기기에서는 할 수 없는 셈입니다. 기본 설정에서는 말이죠.

비전프로는 수평 시야각을 제한하기 때문에 운전하는데 악영향을 미칩니다

이동 중인 사람이 비전프로를 쓸 수 있도록 해주는 "여행 모드(Travel Mode)"가 존재하기는 합니다. 허나 애플은 이동 속도가 일정한 비행기와 같은 환경에만 적합하다고 밝힙니다. 실제로 이 모드는 걸어다닐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더군요. 하지만 자동차 안이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타는 볼트EV에서 직접 테스트해보기로 했습니다. 운전 중 사용해보려 했던 사람이 이미 몇 명 있었던 듯 한데, 운전석에 막상 앉아보니 문제점이 바로 느껴졌습니다. 일단 수평 시야각이 현저히 줄어들어서, 원래의 200도 정도에서 100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눈 앞에 펼쳐진 도로 밖에 보이지 않고, 고개를 돌리지 않는 이상 옆쪽은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행 모드를 켜지 않으면 트래킹 실패 오류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여행 모드를 미리 켜놓지 않으면, 자동차가 빠르게 움직이자마자 시스템이 트래킹(공간 추적) 지점을 놓치게 되면서 트래킹 실패(Tracking Failed) 오류창이 나타납니다. 이 오류가 발생하면 모든 기능이 멈추고, 차량이 완전히 멈추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행 모드를 켜면 시스템 사용이 좀 더 원활해지기는 하지만,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여행 모드를 쓰더라도 창이 시야를 가리게 되고,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실행 중인 창이 시야를 손쉽게 가려버린다는 것입니다. 옆으로 옮겨놓을 수는 있지만, 그 쪽에 사각지대를 만드는 꼴이 됩니다. 그러므로 운전 중에 비전프로를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가 됩니다. 다른 하나는 차량이 길을 따라가는 도중에 띄워진 창이 여전히 불안정하게 움직인다거나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측면 움직임이 발생하면 비전프로가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동승자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비전프로를 움직이는 차량 안에서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현 상태의 비전프로는 고정된 환경에서 쓰는 데만 적합한 것이 확실하고, 이동 중에 사용하는 것은 비행기 정도를 제외하고는 곤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제가 원래 제작했던 웨어러블 컴퓨터나 현대적인 스마트폰과는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적용된 기술 자체는 여전히 흥미로운 점이 많아서 앞으로도 계속 이런저런 테스트를 진행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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