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화신, 그리고...

Sympathy for Lady Vengeance poster
'친절한 금자씨' 포스터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마지막편이 되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가 지금 한국에서 상영중이고 벌써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외국에서는 영어 제목인 'Sympathy for Lady Vengeance'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제에서 여러 상을 휩쓴 '올드보이'(앞서 언급한 3부작의 2번째 작품)로 이미 전세계 영화 팬들의 마음 속에 한 자리를 꿰차고 있기도 합니다.

영화를 봤으니 이 글을 쓰는 것인데 말입니다... (스포일러 나옴)


어제 친한 친구랑 (매우 명랑한 그녀...) 영화관에 이걸 보러 갔습니다. 디지털 버전으로 보려고 했는데... 화질이 꽤 좋다고 들었는데다 지금까지 디지털 버전을 구경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영화 보려고 갔던 곳 (CGV 강변)에서 원하던 시간의 표가 모두 매진되었다는 겁니다. 일반 버전도 상황이 별로 낫질 않았으니 예약을 하고 올걸 그랬나 했습니다. 어쨌든 자동 티케팅 기계 앞에 서서 뭘 할까 고민을 했는데, 한 번다른 CGV 영화관의 상황은 어떤가 확인을 해봤습니다. 알아보니 룡산 쪽은 표가 아직 넉넉히 남아있더군요. 그래서 그쪽 표를 사고 지하철로 장소 이동을 했습니다.

도착하니 아직 상영시간까지 한시간 반이 남은지라 같은 건물에 있는 피자헛에 가서 (참고로 룡산역 꼭대기 부분에 영화관이 있고 역 안에 상점, 식당 따위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피자를 먹었습니다. 이것저것 얘기하다보니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결국 상영 5분 전에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말입니다...

시작을 하면서 주인공인 이금자 (이영애가 맡음)가 감옥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6살 사내아이를 유괴해서 살해한 혐의로 13년 반을 복역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교회 목사와 찬양대가 그녀의 출소를 요란하게 환영했고요. 그 목사는 교회에서 금자씨가 한 간증에 상당히 감명을 받았던 것 같고, 교도소 안에서 '친절한 금자씨'로 통하던 별명도 한 몫 한 듯 했습니다. 그렇지만 금자씨는 환영을 차갑게 거절했습니다. 할 일이 있었거든요.

13년 반동안 계획하던 복수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겁니다.

감옥 안에서 친절한 이미지를 구축한 것은 사실 복수 계획의 일부였답니다. 그녀는 소년을 유괴 살인을 하지 않았으나 루명을 쓰게 된 것이죠. 누가 루명을 씌웠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고, 죄값을 그대로 돌려주기로 맘먹고 있었습니다. 교도소에서 다른 복역자 (한 사람만 빼고)에게 '천사'와 같은 존재로 있게 되면서 존경과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감옥을 나와서 사회에 재적응한 다른 복역자들은 출소한 그녀의 요청이 얼마나 터무니 없든 그 요청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참, 그녀가 친절을 베풀지 않은 한 명은 어땠냐면, 다른 복역자들을 험하게 다루는 뚱보였습니다. 3년간 천천히 독이 쌓여서 (누가 이랬을까?) 결국 죽었습니다 (살해되었다고 해야겠죠).

아무튼, 금자씨는 빵집에 취직했습니다. 빵집 주인은 몇 년 전 교도소 방문 때 그녀의 케이크 만드는 솜씨에 감동을 받았던지라 그녀를 조수로 맞이했습니다. 빵집과 전 복역자들의 집을 오가면서 계획이 천천히 이행되었습니다. 사제 총도 만들고, 복수할 사람(최민식이 맡음)이 어디 사는지도 알아보고 등등.

또, 그녀의 딸이 어디에 있는지도 찾아나섰습니다. 웬 딸인가 할 수 있는데, 알고 보니 미혼모였던 겁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임신을 했더군요. 머리가 좋으시다면 이게 어떻게 얽혀서 나중에 그녀가 루명을 쓰게 되었는지 상상을 해볼 수 있을 겁니다.

여차여차해서 결국 금자씨는 복수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복수가 그렇듯 상당히 껄끄러운 뒷맛을 남겼습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으로 금자씨는 위안을 삼을 수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감상을 정리하자면, '올드보이'랑 비슷한 인상을 따라갔습니다만 극적인 느낌이나 긴박함은 덜했습니다. 그녀의 계획이 너무나도 치밀하게 진행되었는지, 관람자들은 좁지만 잘 알려진 길을 따라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 영화는 그래서 영상미 자체에 초점을 맞춘 흔적이 뚜렷했습니다. 특히, 금자씨의 계획이 목적에 다가가면서 서서히 색감이 사라지더니 결국 화면이 완전히 흑백으로 바뀌었습니다. 처음 본 디지털 상영 영화 일부가 흑백영화였다니 잊기 힘든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나름대로 반전이 있는데, 엔딩 크레딧이 선명한 색상으로 칠해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자주 보기 힘든 일이죠.

어쨌든, 피튀기는 시점에 왔을 때는 이미 색상이 사라진 후였기에, 진행 상황이 잔인하고도 무미건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냥 뒀으면 B급 공포 영화를 보는 것 같았을텐데 말입니다. 이 점은 제작자의 상당히 현명한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금자씨의 정신상태를 거울처럼 보여주었다고나 할까요.

모든 사람이 이 영화를 흡족하게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놓치기에는 아까운 영화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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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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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만 작성일: :

언제 봤냐구!
포스터를 블러그에 올려도 되니? 저작권 침해아냐?

FreeSky 작성일: :

음 혼나고 이렇게 올립니다 ㅎㅎ

아직 다 못읽었습니다. 내일 중국 가기 전에 다 보고 가야겠습니다.(퇴근하고요 ^^)


음 영화를 보고도 제가 놓친 부분이 리뷰 되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시 영화를 이해 하게 됐습니다.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p.s 써도 못보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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